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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회로

by rewq67 2025. 1. 10.

 

1. 아날로그 설계란?

도대체 아날로그 회로랑 디지털 회로랑 뭐가 다른 거야? 학부 때부터 수도 없이 나 자신에게 던진 질문이다.

아날로그 회로설계로 입사한 지 어느새 2년 3개월. 이제는 좀 대답할 수 있을 것 같다. 입출력으로 0이나 1만 다루는 회로는 디지털. 그 외에는 모두 아날로그 회로다. 

그래서 이 글을 쓰는 이유가 뭔데? 학부 출신 2년차 아날로그 설계 엔지니어로서 지금 하는 일과 느낀 점을 읊어보기 위함이다. 또한, 아날로그에 대한 찐득한 로망이 가득했던 과거의 내 모습과 확연히 달라진 지금의 나를 비교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지극히 주관적이고, 오로지 내가 겪은 경험만을 토대로 작성하는 것이니 참고하길 바란다.

우선 업무부터 주르르 나열한 다음 하나하나 설명해보겠다.

 

2. 업무 List

나는 다음과 같은 일을 한다. 하나하나씩 말해보겠다.

- Datasheet 작성
- Manual Board 제작
- Test Plan 작성 및 setup
- 계측실 샘플 관리 

- Datasheet 작성
청소기를 사든, 스피커를 사든 우리는 항상 설명서가 필요하다. 무슨 기능이 있는지, 어떻게 동작하는지, 보증 기간은 얼마나 되는지 등등 상품에 대한 정보가 모두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정보가 잘못 기입되어 있다면 어떻게 하는가? 충전 없이 12시간 지속될 수 있는 노트북이라길래 샀는데 실제로 10시간 만에 꺼진다면 항의를 할 것이다. 그만큼 설명서는 중요하다.

Datasheet는 반도체의 설명서를 말한다. 칩의 모든 정보를 담고 있으며 고객에게 오픈하는 정보, 오픈해서는 안 되는 정보를 구분해서 작성해야 한다. 쉽게 말하면 문서 작업인데 칩 내부 각 IP 담당자들의 정보를 모두 취합해야 하기 때문에 여간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word 기준으로 20~30 page 정도 분량이다.

난이도 ☆☆☆★★
재미 ☆☆☆☆★
성취도 ☆☆☆★★
스트레스 ☆☆☆★★

- Manual Board 제작


칩을 만들면 칩을 붙여서 평가할 보드가 필요하다. 칩은 결국 우리가 쓰는 게 아니라 고객한테 팔 거니까 고객이 실제 사용하는 환경을 최대한 구현해서 보드를 만든다. 그걸 Manual Board라고 한다. Manual Board를 잘 만들려면 어떤 테스트가 필요하며, 해당 테스트는 어떤 조건에서 진행하는지, 테스트를 조금 쉽게 할 수는 없는지 등등을 고려해야 한다. 

Manual Board를 제작하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Schematic 제작(설계팀) -> A/W 제작(외주) -> A/W 검토(설계팀) -> Board 제작(외주)

과정만 보면 간단한데 중간중간에 외주 맡기는 일이 참 신경 쓸 게 많다. 구매부서랑 외주 업체 사이에 껴서 수많은 메일이 오고 가기 때문이다. 그래도 막상 만들고 나서 팀원들이 내가 만든 보드로 테스트하는 거 보면 뿌듯하긴 하다.


난이도 ☆☆☆★★
재미 ☆☆★★★
성취도 ☆★★★★
스트레스 ☆☆☆☆★

 


- Test Plan 작성 및 setup
FT, PT, RT. 양산을 위한 테스트들이다. Final Test, Probe Test, Reliability Test의 약자다. 그리고 test plan이란 각 test를 어떻게 할지 기술해놓은 문서다.

잠깐 설명을 하자면 PT는 웨이퍼 상태의 칩에 Probe card를 연결해서 전기적 특성을 평가하는 단계이다. PT에서 하는 테스트들은 대부분 FT에서 다시 한다. 그럼 왜 FT에서만 하지 굳이 PT를 따로 하냐? PT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웨이퍼 상태, 즉 패키징 하기 전이다. 패키징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고려했을 때, 불량품을 패키징 하는 것보다 PT를 통해 걸러내는 게 좀 더 효율적이라는 계산 때문이다.

FT는 양산 이전에 평가해야 할 모든 항목들을 테스트한다. 이건 여담인데 몇 개 빼먹고 테스트하면 품질팀에서 뭐라 한다. 근데 그렇다고 모든 아이템을 테스트하려면 시간 오래 걸린다고(=돈 많이 든다고) 테스트팀에서 뭐라 한다. 쨌든, 모든 테스트 아이템을 다 나열할 수는 없겠지만 PMIC의 경우 Line/Load Regulation, Protection, Power sequence 등등의 테스트를 진행한다. 이건 칩마다 다를 테니 FT를 거치면 고객사에 보낼 수 있는 수준의 칩이 된다고 알면 충분할 것 같다.


RT는 신뢰성 테스트다. 반도체는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남극이든, 사막이든 웬만한 모든 환경에서 잘 동작해야 한다. 그런 가혹한 조건들에서 칩을 동작시켜서 잘 살아있는지 확인하는 테스트가 바로 RT다. 예를 들어 A라는 칩의 수명 테스트를 해야 한다고 치자. 정상 조건에서 칩 죽을 때까지 몇 년 동안 동작시키는 게 아니라, 고온, 다습, 고전압 등등 가혹 조건을 세팅해서 동작시킨다. 정해진 수식에 해당 변수들을 넣으면 수명이 계산된다. 1000시간만 잘 동작하면 10년의 수명이 보장된다고 생각하면 된다.


반도체가 잘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물론 설계도 중요하지만 PT, FT, RT도 매우 중요하다. 특히 FT..! 그래서 좀 까다롭고 생각할게 많다. 그래서 회로를 잘 아는 설계팀에서 test plan을 작성해 테스트팀에 전달해준다. 근데 문제는 테스트팀이 회로를 모르다 보니 계속 우리한테 질문이 온다. 전압 인가 조건 이게 맞나요? 전류 10uA 흐르는 게 맞나요? 등등 하루에 10번 넘게 전화 올 때도 있다. 같은 회사의 유관부서지만 가끔 우리를 을처럼 여기는 몇몇 사람들이 걸린다면 그날 하루는 참 기분이 좋지는 않다.

난이도 ☆★★★★
재미 ☆☆☆★★
성취도 ☆☆★★★
스트레스 ☆★★★★

- 계측실 샘플 관리
이게 뭐 일이야? 그냥 샘플 관리하면 되잖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맞다. 그런데 우리 팀만 쓰는 계측실이 아니기에 여러 샘플이 뒤죽박죽 섞여 있고, 팀원 모두가 테스트할 때마다 나한테 와서 샘플을 찾는다. 내가 듣지도 못한 샘플을 물어보기도 한다. 이건 뭐 어려운 일은 아닌데 그냥 다른 일하다가 중간중간에 인터럽트 걸리는 경우가 많아 좀 짜증 나는 일이다.

그래도 계측실에 자주 가서 노가리 깔 수 있는 특혜가 있긴 하다.

난이도 ☆☆☆☆★
재미 ☆☆★★★
성취도 ☆☆☆☆★
스트레스 ☆☆★★★

대략적으로 내 업무들을 적어봤다. 혹여나 아날로그를 희망하는 취준생들이 있다면 이런 일도 있구나. 하고 참고하면 좋겠다.